치암고택 유숙기

내 나라를 빼앗긴 잘못을 온통 자기 탓으로 돌려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바위조차에게도 부끄럽다는 치암고택은

그러나 한바퀴 휘 들러보고 바람처럼, 나그네처럼 지나칠 곳이 아니었습니다.

곳곳에 수택이 번져 깃든 누대의 정성,

뿌리 당당히 뻗어 어김없이 이어져

보이지 않는 꽃향기 흩어 드날리는 기상.

언제까지나 겨레의 생생한 희망이 켜켜이 쌓이는 곳이었습니다.

퇴계선생의 명징한 가르침이 한 순간 순간 부끄러움을 일깨우고

이름 없는 이는 없는 대로 , 이름 있는 이는 있는 대로

금석의 뜻, 심장에 새기우고 남부여대 솔가하여

얼어붙은 겨울 하늘 이국땅으로 향한 바로 그곳이었습니다.

겨레에 어린 처자 유관순이 있다면

굶어 죽은 시아버지 모신 며느리,

집 뛰쳐나간 독립군 지아비의 아내,

피 이은 아들 형제 삼대의 광복군을 아우르시고

두 눈과 생명을 향불로 바꾸신 겨레의 어머님

김 락 어머님께서 이웃하여 상기도 살아계심을 눈물로 알게 되는 곳.

바로 그곳이었습니다.

제 살보다 더 살가운 조상님의 조상님은

흔들림 없이 단군 할아버지라는 것을 결국 알게 되는 곳.

그 모든 역사의 흔적을 온 몸으로 펼치는 이웃집 아저씨 같은 주인장.

그분은!

구순이 다 되신 아버님 모셔 아침, 저녁 문안 올리시고

수인번호 264의 따님, 보살피면서 오누이로 살아가는,

어렵디 어려운 종택을 지켜가는 부인에겐 말없는 기둥으로

예술인, 사업인, 학자요 국학 광복군으로

지금도 촛불처럼 한 몸을 어김없이 불사르는 이동수 광복군께서

가슴에 활화산을 묻고 벙글한 미소로 틀림없이 반기시는 곳이었습니다.

절로 마음이 곧아져 가슴과 허리가 꼿꼿해지는

치암고택의 누마루에 앉아

주인장이 권하시는 삶이 녹아든 차를 한 번 마셔 보시지 않겠습니까?

치암고택의 황토방 하룻밤은

오천년의 역사와 일 만년의 휴식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국학원 교육원장 원암 장영주 -감사의 마음을 다 전 할 길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