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국적 리더십과 선비정신이 도대체 어떤 관련이 있는 걸까? 지난 9월 19일, 안동 군자마을 탁청정에서는 색다른 토크 콘서트가 개최됐다. ‘한국적 리더십, 선비정신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콘서트에 함께 한 정옥자 교수의 답은 이랬다.

“500년 동안 지속된 조선의 역사는 세계사에서 그 유례를 찾기 힘든데, 그 찬란한 역사를 이끈 리더가 바로 선비였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자기수양을 통해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자세와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남에게는 관대한 ‘박기후인(薄己厚人)’ 등 선비의 삶과 정신 속에서 한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리더십을 찾아야 한다.”

콘서트에는 정옥자 교수(서울대 명예교수)와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교수(Emanuel Pastreich, 한국명 이만열, 경희대교수)를 비롯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전·현직 CEO 및 여성 CEO 등이 참석하고 광산 김씨 문중 인사들이 참여해 한국적 리더십에 대한 심도 깊은 대화가 이뤄졌다.

안동 군자마을 탁청정에서 ‘한국적 리더십, 선비정신을 찾아서’란 주제로 토크콘서트가 열렸다.

이번 토크 콘서트는 한국문화 유전자 발굴 및 확산 사업을 위해 기획된 문화행사이다.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한류’ 열풍의 근원은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문화 유전자에 있다는 생각으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국학진흥원이 주관했다. 한국국학진흥원은 앞서 ‘한국인을 대표하는 문화유전자는 과연 무엇인가?’로 지난 4월 23일~30일 사이에 전문가 100인, 일반인 1,000인에게 한국 문화유전자에 대한 인식 조사를 실시했는데 그 결과가 자못 흥미롭다.

과거에는 한국을 상징하는 문화코드로 ‘한’을 떠올렸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예의’를 1순위로 꼽았으며, 그 결과를 토대로 ‘정(나눔)’, ‘역동(빨리빨리)’, ‘맛(곰삭음)’, ‘끈기’, ‘흥’, ‘어울림’, ‘공동체(우리)’, ‘자연스러움’ , ‘신명(해학)’, ‘예의’ 를 한국인의 10대 유전자로 선정했다. 이렇게 선정된 10가지 문화유전인자를 기초로 전통과 현대를 이어주는 이색 문화행사를 통해 한국인의 문화유전자를 재조명해 보자는 것이 한국문화 유전자 발굴 및 확산 사업의 취지이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1순위로 선정된 ‘예의’로 대표되는 조선시대 ‘선비정신’에서 21세기 한국의 미래를 이끌어나갈 한국적 리더십의 원형과 개성을 찾고 현대적으로 계승하고 적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기 위해 장소 역시 선비의 고장 안동으로 정했다. 그 현장에 기자도 동석했다.

토크 콘서트에 앞서 “21세기 문화의 시대를 맞아 물질적 풍요를 넘어 정신적 품격을 갖춘 선비정신을 통해 대한민국 미래를 이끌 새로운 리더십이 나오길 기대한다.“는 소감을 전한 한국국학진흥원 김병일 원장(가운데 서있는 사람)

“선비하면 꼬장꼬장한 이미지가 있는데 과연 선비가 어떤 사람이며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나?”라는 질문을 시작된 토크 콘서트는 “선비정신과 리더십이 어떤 연관성이 있나?”, “글로벌화 된 리더십이 되기 위해 선비정신에서 어떤 정신을 계승해야하나?” 등을 주제로 약 2시간 동안 대담이 이어졌다.

정옥자 교수는 “선비정신이 시대에 안 맞고 버려야할 대상이라는 선입견이 있다. 하지만 문치주의 국가였던 조선시대 엘리트가 바로 ‘선비’다.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자세와 ‘박기후인(薄己厚人)’ 을 통한 선비정신의 부드러운 리더십이야 말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십”이라며 조선시대 500년을 지배했던 ‘선비정신’이 가진 전통의 가치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며 현대에 계승해야 할 정신이라고 설명했다.

또 “사람이 지켜야할 도리인 ‘의리’와 이름에 걸맞은 분수인 ‘명분’은 현대에서는 핑계를 대는 것으로 의미가 왜곡되고 있다.”며 “‘의리와 명분’을 따진다고 하면 꼬장꼬장하다고 여기지만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의리’와 인정 사이에서 ‘명분’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즉, 감성과 이성의 조화를 통한 중용정신이야말로 오늘날 만연하고 있는 청탁과 관련된 부정부패에 대한 대안이 아닐까 생각한다.”며 리더들에게 필요한 덕목을 선비정신에 찾았다.

한국의 원로 사학자인 정옥자교수와 미국의 젊은 서양학자 이만열 교수가 ‘선비정신’에 대해 열띤 토크를 이어가고 있다.

잠시 쉬는 시간을 이용해 ‘선비정신’에 대해 담소를 나누고 있는 정옥자 교수와 이만열 교수

이어 “운동선수의 용어로만 남아있는 극기는 ‘극기복례’라는 선비정신에 대해 자신의 욕심과 게으름을 이겨내고(극기) 인간과 인간 사이에 존중을 가지는 마음으로 돌아가면(복례) 사회질서가 잡히고 품격 있는 대한민국 사회가 될 것”이라며 오늘날 어지러운 현대사회에서 리더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보편적인 가치로 ‘선비정신’이 재조명돼야 할 필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그런가 하면 이만열 교수는 “외국인의 시각으로 볼 때 일본 하면 사무라이, 영국 하면 젠틀맨을 떠올리는데 한국하면 기업체가 먼저 생각난다. 앞으로 한국 하면 떠오르는 정신문화로 ‘썬비(선비)정신이 한국의 상징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어 “한국의 ’선비정신‘이 추구하고 있는 보편적 가치가 바로 세계적인 엘리트의 모습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유창한 한국어로 고상한 선비정신이 앞으로 해외에 많이 소개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다소 무겁게 시작됐던 ‘선비정신’을 주제로 한 토크 콘서트는 약 2시간이 넘게 진행됐음에도 불구하고 ‘탁청정’에 모인 사람들은 중요한 부분은 메모하고 고개도 끄덕이는 등 집중력을 잃지 않고 시종일관 진지한 모습으로 열중했다.
 

선비의 맑은 기운이 흐르고 있는 탁청정에서 시종일관 진지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청중석에서 경청을 했던 한지수(에이치컴 상무)는 “처음에 선비정신이라고 했을 때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토크 콘서트를 들어보니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생활 철학 같고 우리사회의 시대정신으로 재조명돼야 할 것 같다.”며 “요즘 왕따 문제나 폭력 등의 문제가 심각한데 선비정신을 가르치는 것이 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며 강의 소감을 전했다.

도산에서 태어났고 안동에서 문화 활동을 하고 있다는 이동수(성균관 청년유도회 중앙회장)씨는 “조선시대에는 ‘선비’가 되려면 어릴 때부터 학문과 더불어 인격을 수양해 사회에 기여를 했지만 지금의 학교 교육 그렇지 못한 것 같다.”며 “인격에 대한 평가는 없고 오로지 성적만 평가해 우리 사회에서 리더가 된다. 인격함양이 돼있지 않으면 모든 구성원들에게 제대로 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다.”고 쓴소리도 아까지 않았다.

외국인으로 ‘선비정신’이란 토크 콘서트에 대담자로 참석한 이만열 교수는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한류가 전부가 아닌데 한국문화의 정신이 소개되지 않는 것이 매우 아쉽다” 며 고상스러운 선비정신이 한국을 대표하는 정신으로 해외에 많이 소개됐으면 좋겠다는 소감을 전했다. 더불어 “조선시대에는 부권의 중심문화로 남자가 ‘선비’로 리더역할을 했지만 현대사회에서 한국이 세계적인 국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여성의 역할도 중요하다.”며 대담 때 미처 말하지 못했던 여성의 리더십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여성 오피니언 리더로 선비 토크에 참가한 에이치컴 한지수 상무가 메모를 해가며 대화에 열중하고 있다.

선비의 정신이 흐르고 있는 안동 군자마을 탁청정에서 ‘수운잡방’의 조리비법으로 만들어진 선비들의 음식문화를 맛보면서 ‘한국적 리더십, 선비정신을 찾아서’로 진행된 토크 콘서트는 감정을 절제하며 수신과 내면을 추구하는 선비의 음악 ‘정가’의 연주를 끝으로 마무리됐다.

이번 행사를 기획한 한국국학진흥원 박종천 책임연구원은 “대중문화로만 인식되는 ‘한류’가 아니라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리더십이 ‘선비정신’을 통해 재해석된다면 ‘한류’의 품격 또한 높아질 것”이라며 “한국인의 유전자 중 1위로 선정된 선비정신의 예의 문화유전자를 통해 자기 자신의 인격함양과 더불어 학문적으로 준비된 사람이 리더가 되어 정신적, 문화적인 부분에서 세계적인 리더 역할을 할 수 있다면 한국사람 혹은 한국이 가진 위상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조선시대의 선비정신을 계승해 현대사회의 바람직한 리더십을 생각해 보면 좋겠다는 이동수 회장

한편, 한국국학진흥원에서는 ‘한국문화유전자 발굴 및 확산 사업’을 위해 선정된 10개의 한국인의 문화유전자를 가지고 전통에서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는 한국인의 문화유전자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돕기 위해 토크콘서트, 문화행사, 포럼, 책 출판 등을 진행 중이다.

토크 콘서트로 진행된 ‘예의’를 비롯해 명창 안순석관 K-POP의 아이유가 만나는 ‘흥’, 통영 오광대와 개그팀 용감한 녀석들의 ‘해학’, 무형문화재 방영옥과 패션디자이너 이지승의 ‘끈기’, 김장훈과 구례운조루에서 함께하는 ‘나눔’의 문화행사를 통해 전통에서 현대까지 이어지고있는 한국인의 문화유전자에 대해 재조명해 보고 있다.

한때 홍콩영화에 대해 전 세계가 열광하다가 어느 순간 자취를 감췄다. 이는 단지 홍콩 영화만 보았을 뿐 홍콩의 문화적인 정체성에 대해 깊이 있게 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요즘 ‘한류’를 통해 한국의 대중문화가 세계에 소개되고 있지만 문화적인 정체성은 미미한 것이 현실이다. 이번 ‘한국문화유전자 발굴 및 확산 사업’을 통해 한국인의 우수한 문화유전자 속에 흐르고 있는 ‘전통’을 현대적 가치로 재발견해내고 거기에서 답을 찾는다면 잠깐의 열풍이 아닌 진정한 ‘한류’로, 세계문화의 한 분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본다.

정책기자 정해경(프리랜서) cheonkoook@hanmail.net